물어보고 눌러보고 살펴보고…진료실 '5진'이란?

by 통준회 posted May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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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염을 자주 앓는 30대 직장여성 A씨는 어지간히 아파도 내과에 가기가 싫다. 남자 의사가 웃옷을 걷어올리라고 한뒤 맨살에 청진기를 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옷 위로는 청진기 진찰이 불가능할까?

#2. 서울 강남구의 척추병원  전문의 B씨는 여성 디스크 환자를 볼때마다 촉진 대신 영상 판독 만으로 진단을 하곤 한다. 통증 부위를 눌러봐야 정확한 진단이 될텐데, 성추행으로 오해받을까봐 걱정돼서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방법은 5가지다. 눈으로 보는 시진, 환자 병력을 묻는 문진, 청진기로 듣는 청진, 두드려보는 타진, 만져보는 촉진 등 '5진'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5진이 종종 의사와 환자 사이에 트러블을 일으킨다. 왜 그런지 알아봤다.

'시진'은 환자 상태 및 환부를 눈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만성질환의 경우 환자가 진료실에 걸어들어오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진찰의 시작점이다. 체형이나 피부색의 변화 등이 이전 내원 때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의사 눈으로 보고 환자 상태를 가늠한다. 김성현 청아의원 원장은 "빈혈이 심해지면 결막이 더 창백해지고, 골다공증 환자는 등이 굽는 것만 봐도 증상 진행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가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모니터로 환자를 만나면 대면진료처럼 세밀한 시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진'은 의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단법이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환자가 호소증상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이다. 문진에서 유도성 질문이나 암시는 금물이다. 그래서, 환자가 자기의 증상을 '주도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하면 의사는 같은 방식으로 질문을 다시 하게 되고, 환자는 아파 죽겠는데 의사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에 짜증이 난다.

'청진'은 청진기를 통해서 심장·폐·장 등 장기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청진기를 대면 어떤 소리가 들릴까? 김 원장은 "변비 환자는 장 활동이 미미해 음이 희미하게 들리고 반대로 장염 환자의 배에서는 천둥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청진기는 꼭 맨살에 대어야 할까? 최근에는 옷 위로 청진할 수 있도록 음을 증폭하는 전자청진기도 나와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가 사용하는 일반청진기는 옷 위에서 청진하면 정확한 소리를 듣기 어렵다.

'타진'은 신체 표면을 두드려 나오는 공명을 통해 내부 장기 상태를 알아내는 것이다. 보통 흉부·복부·두개골 등의 질병 진단에 사용된다. 복수를 체크할때나 맹장염 등의 진단에 유용하다. 심장이나 방광의 크기, 흉강·복강 속의 가스나 체액의 유무, '뇌에 물이 차 있는' 수두증 여부 등을 손가락만 두드려봐도 알 수 있다.

'촉진'은 의사가 손을 환자의 몸에 대서 상태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혹·멍울·임파선 등의 크기를 확인하고 단단한 정도에 따라 양성·악성 구분도 가능하다. 특히 간 비대 등 장기가 커진 경우 촉진이 꼭 필요하다. 반면 '성추행 논란'과 관련해 가장 민감한 이슈가 되는 진찰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촉진이 필수불가결한 유방암을 남성 의사가 진단할 때는 간호사 입회 하에, 환자 얼굴을 가리고 환부만 노출시키는 '오해 예방 조치'를 취한다. 의사 입장에서 가장 답답한 것은 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을 진단할 때다. 척추질환은 영상검사 결과는 병이 미미해도 환자가 큰 고통을 겪기도 하고, 사진상으로는 증상이 심한데 통증은 별로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환부를 눌러 가면서 몸을 움직여 보게 해야 수술 여부 등 해당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의사들 중에는 오해를 사기 싫어서 촉진을 생략하고 사진에 나타난 결과만 보고 치료법을 결정하기도 한다. 신재혁 강동성심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척추질환 진단에는 의사의 경험과 감각이 핵심적이므로, 오해 때문에 촉진을 생략하지 않도록 의사와 환자가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