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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지극히 주관적인 '냉면의 모든 것'④] 함흥의 힘</h3><br><span class="end_photo_org"></span>날이 더워지면서 서울 유명 냉면집에 길게 '줄'이 선다. 차다는 뜻의 '냉(冷)'자가 아마도 더위를 내쳐줄 것이란 믿음이 있는 탓이다. 전국에 있는 냉면집을 두루두루 다녔다. 이 잡글은 맛집 탐방기가 아니다. 냉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욕망의 발현일 뿐이다. 글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이메일(<span class="word_dic en">steelchoi</span>@<span class="word_dic en">naver</span>.<span class="word_dic en">com</span>)로 지적해주시면 좋겠다. 배움의 길에 나침반으로 삼겠다. [편집자 주]<br><br>냉면의 한축이 평양냉면으로 통칭되는 '평양식 국수'라고 한다면 또 다른 한축은 두말할 나위없이 함흥냉면이겠죠. 북한에서는 '농마(녹말의 함경도 사투리)국수'라고 부른다는 함흥냉면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br><br>[지극히 주관적인 '냉면의 모든 것'③]에서는 서울에서 가볼만 한 '평양식 국숫집'을 소개했습니다. 냉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 주신 분도 있고, 평냉부심이 가득한 잡글이라고 말씀해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br><br>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면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 편에 속하지만 음식을 평가할 수 있는 미식가 혹은 전문가가 아닙니다. 따라서 잡글일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br><br>평냉부심은 없습니다. 횟수로 따져도 평양식 국숫집 보다는 오장동 흥남집의 문턱을 더 자주 넘고 있습니다. <br><br>각설하고, 이제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국수가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 건 해당 지역에서 잘 자라나는 곡물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겠죠. <br><br>메밀이 많이 나는 평양지역에서 메밀면이 대중적이 된 것처럼 함경도 지역에서는 감자가 많이 재배됐습니다. 척박한 곳에서 잘 자란다는 메밀마저 함경도 땅은 허락하지 않았던 겁니다. <br><br>감자에서 나오는 전분을 주 재료로 만든 농마국수는 쫄깃하지만 매우 질겨서 조금 과정해서 '나일론 국수'라고도 불렀습니다. 여기에다 식초로 삭힌 가자미회를 고명으로 얹은 뒤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을 추가해서 먹었습니다. <br><br>속초에서는 가자미 대신 명태를 올려 '코다리 냉면'을 탄생시켰고, 서울에서는 식초에 삭힌 회 대신 삶은 육고기를 고명으로 올리기도 합니다. <br><br><span class="end_photo_org">
<em class="img_desc">오장동 함흥냉면(왼쪽)과 오장동 신창면옥</em></span>앞선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평양냉면, 함흥냉면이 남한으로 퍼져나가게 된 주요한 계기는 6.25전쟁입니다. <br><br>평안도 출신 실향민들은 영락교회 등 남산 일대와 남대문 주변해 정착해 남대문시장을 개척했고,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은 건어물 중심의 중부시장을 개척함과 동시에 청계천, 오장동에 터를 잡았습니다. <br><br>오장동에 내로라하는 함흥냉면집이 많은 건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그곳에 많이 살았기 때문일 겁니다. <br><br>전성기 때는 오장동에서만 20여개의 함흥냉면이 몰려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오장동 3총사가 명맥을 지키고 있습니다. <br><br>오장동 흥남집이 1953년도에 가장 먼저 문을 열었고 다음해에는 오장동 함흥냉면이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만화 '식객'에 등장해 유명세를 탄 오장동 신창면옥은 1980년도에 생겨 현재 세 집이 정립(鼎立 : 솥발과 같이 서로 벌여 대립함)하는 형국입니다. <br><br>함흥냉면은 어떻게 먹는게 가장 맛있을까요? 대체로 함흥냉면집에 가면 '냉면 맛있게 먹는 법'이 벽면에 붙어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하면 큰 낭패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br><br><span class="end_photo_org">
<em class="img_desc">오장동 흥남집(왼쪽)과 속초 함흥냉면옥</em></span>오장동 흥남집의 경우 특이하게 참기름병이 식탁마다 놓여있는데요. 참기름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넣어서 먹는 분들이 있어 한번 따라해봤는데 놀랍게도 아주 맛있었습니다. 여기에다 겨자와 식초를 취향에 맞게 조금씩 더 넣으면 가히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br><br>함흥냉면의 본가는 오장동이 아니라 속초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함경도 출신의 실향민들은 전쟁이 끝나자 고향과 가장 가까운 속초로 모여들었습니다.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죠. 하지만 통일은 되지 않았고 실향민들은 속초에서 고향음식을 나눠먹으며 정착을 했던 겁니다. 속초에 아바이순대가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죠. <br><br>현재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함흥냉면집인 속초의 '함흥냉면옥'은 감자 전분이 고구마 전분으로, 냉면위에 올리는 가자미회가 명태회로 바뀌어 '속초식'이라는 접두사가 붙기도 하지만 실향민들 사이에서는 가장 함경도식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br><br>오장동과 속초에 함흥냉면이 있다면 부산에는 '밀면'이 있습니다. 흥남철수로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대거 부산으로 유입됐고 이후 부산의 면 문화는 다소 특이한 양상으로 발전하기에 이릅니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
<em class="img_desc">가야할매밀면(왼쪽)과 개금밀면</em></span>밀면을 '함흥냉면의 부산 현지화'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밀면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이북출신 피난민들이 냉면을 먹고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어 구호품인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가 가장 많이 회자됩니다. <br><br>겉보기에 밀면은 비빔냉면, 즉 함경도식에 가깝습니다. 면 위에 올려진 매콤한 양념장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런데 '물 밀면'을 시키면 여기에 육수가 한가득 담겨 나옵니다. 말그대로 '퓨전'(라틴 어 '<span class="word_dic en">fuse</span>(섞다)'에서 유래한 말로, 어원적으로는 '이질적인 것들의 뒤섞임, 조합, 조화'를 뜻한다)인 셈입니다. 물론 면은 메밀면도 전분면도 아닌 밀가루면(전분이 조금 섞인)입니다. <br><br>밀면의 육수는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특유의 향을 담고 있습니다. 좋은 육수를 내기 위해 약재를 포함한 여러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결과로 보이는데요. 버섯향 같기도 하고 한약 냄새와도 닮았습니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익숙해지면 묘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br><br>가야할매밀면, 개금밀면이 유명한데 특히 개금밀면은 최근 냉동포장으로 전국배달을 시작해 굳이 부산에 가지 않더라도 손쉽게 집에서 원조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워낙 서울의 냉면값이 고공행진을 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싼 밀면의 가격은 고마울 정도입니다. 보통 6천원선이고 비싼 곳도 7천원대 입니다. <br><br>서울에도 밀면집이 속속 생겨났지만 워낙 냉면의 강호들이 많아서인지, 서울에서 밀면집이 크게 성공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br><br><span class="end_photo_org">
<em class="img_desc">깃대봉냉면(왼쪽)과 낙산냉면</em></span>다만 서울에서도 밀면과 비슷한 맛을 내는 냉면집들이 있습니다. 서울 동묘역 근처의 깃대봉냉면과 낙산냉면인데요.<br><br>물론 밀면은 아니지만 매운 양념장에 육수가 부어져나오는 모양새가 비슷합니다. 특히 깃대봉냉면은 매운 냉면으로 유명세를 탔는데요. 보통맛을 시켜도 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정도입니다. <br><br>오늘 함흥냉면 어떠십니까. 식초에 삭힌 회를 가늘지만 질긴 면발에 휘휘 감아 입안으로 쭉쭉 끌어올렸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기분좋은 매운 맛. <br><br><br><span id="husky_bookmark_end_1468535940344"></s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