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새가 알려 준 연인의 섬, 백령도

by 통준회 posted Dec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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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span class="word_dic hj">白</span><span class="word_dic hj">翎</span>)이라면 흰 새의 날개를 뜻한다. 예로부터 백령도는 철새의 보금자리로서 한때는 수백만 마리에 이르는 두루미가 깃들였다고 한다. 이 섬의 고구려 때 이름은 ‘곡도(<span class="word_dic hj">鵠</span><span class="word_dic hj">島</span>)’로서, 곡(<span class="word_dic hj">鵠</span>)은 고니〔<span class="word_dic hj">白</span><span class="word_dic hj">鳥</span>〕나 따오기를 가리키는 한자말이다. 흔히 ‘곡곡(<span class="word_dic hj">鵠</span><span class="word_dic hj">鵠</span>)’이라면 백조의 울음소리를 형용한 말이고, 곡립(<span class="word_dic hj">鵠</span><span class="word_dic hj">立</span>)이라면 백조처럼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는 모습을, 곡망(<span class="word_dic hj">鵠</span><span class="word_dic hj">望</span>)이라면 무언가 학수고대하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말하자면 백조의 고향인 이 섬을 백령이라 이름한 것이다.<br><br>백령도가 온통 흰 새로 뒤덮였을 때의 이야기다. 백령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황해도의 어느 마을에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고을 원님의 고명딸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원님 집에서 이 선비를 완강히 거부한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설득해도 원님은 요지부동, 선비를 사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사람 사이는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둘 사이를 떼놓을 수 없음을 안 원님이 딸을 외딴 섬으로 쫓아버린 것이다.<br><br>얼마 동안 갈라 놓으면 곧 잊혀지려니 했던 것인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선비는 전보다 더 처녀를 갈구했다. 갈망도 지극하면 기적이 생기는 법인가, 하루는 한 마리의 백조가 날아와 날갯죽지에서 흰 종이를 떨구고 가는 꿈을 꾸게 된다. 흰 날개를 가진 백조가 암시하는 바는 무엇인가?<br><br>그것은 바로 백령(<span class="word_dic hj">白</span><span class="word_dic hj">翎</span>)의 섬, 잠에서 깨어난 선비는 이내 장산곶에서 배를 얻어 타고 백조의 섬으로 달려간다. 백조의 흰 날개로 뒤덮힌 백령도에는 과연 선비를 기다리는 처녀가 있었다. 두 사람의 포옹은 떨어질 줄 몰랐으니, 백로의 보금자리가 이들 연인의 안식처로 변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죽음으로 끝나는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달리 우리의 러브 스토리는 이처럼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백령도에서 해후한 이들은 평생 이 섬에서 흰 새들과 함께, 그야말로 백년해로했다는 이야기다.

<strong>백령도</strong><br>황해도의 어느 마을에 가난한 선비가 살았는데, 고을 원님의 딸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를 안 원님이 딸을 외딴 섬으로 쫓아 버렸다. 처녀를 그리워하는 선비의 정성에 감동했음인지 어느 날 꿈속에 백조가 날아와 흰 종이를 떨구고 간다. 잠에서 깬 선비는 그 길로 백령도로 달려가 처녀를 만났고 그곳에서 백년해로했다고 한다.

동해의 최동단 독도보다 해가 반시간이나 늦게 뜨고 인천보다 평양이 더 가까운 백령도, 이 백조의 보금자리를 두고 앞서 ‘곡망(<span class="word_dic hj">鵠</span><span class="word_dic hj">望</span>)의 섬’이라고 했다. 선비와 떨어져 이곳까지 쫓겨온 처녀는 한때나마 연인을 곡망했고, 이 섬 앞바다 임(인)당수에 빠져 죽은 심청은 봉사 아버지의 눈뜨기를 곡망했다. 백령도의 곡망은 허구의 전설이나 소설상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황해도 주민들이 이 섬으로 이주해 왔는데 그들은 아직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다. 손에 잡힐 듯한 장산곶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 지금도 곡망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심청각에서 보는 장산곶

<strong class="c-title" style="-webkit-tap-highlight-color: rgba(0, 0, 0, 0);">심청각에서 보는 장산곶</strong><span class="c-description" style="-webkit-tap-highlight-color: rgba(0, 0, 0, 0);">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북녘 땅 장산곶이다. 그 왼편으로 유독 검푸르게 보이는 바다가 임당수라고 한다.</span>

“비나이다 비나이다. 나의 목숨은 추호도 아깝지 않으나 앞 못 보는 우리 부친 천지에 사무친 원한을 살아 생전 풀려고자 이 몸을 바치오니 하느님은 굽어 살피시사 우리 부친 어두운 눈을 불원간 밝게 하사 광명천지를 보게 해 주시옵소서.”<br><br>이것은 아버지의 눈뜨기를 바라는 심청의 곡망이다. 백령도와 그 앞바다는 우리의 고전 〈심청전〉의 실제 무대로 알려져 있다. 이 섬은 신라시대 이후 중국으로 내왕하는 선박들의 중간 기착지였으며, 또한 항해의 안전을 위해 용왕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속이 있었다고 전한다.<br><br>아버지의 개안을 위해 물로 뛰어든 심청이 연꽃을 타고 인간세계로 환생했다는 연봉바위는 이 섬의 남쪽, 곧 백령도와 대청도의 중간쯤에 있다. 연꽃이 바다 위에 떠서 이곳까지 밀려왔다는 소설 속의 이야기는 실제 임당수 일대의 조류와 일치한다니 〈심청전〉은 단순한 허구로만 볼 일이 아니다.<br><br>연꽃은 불가(<span class="word_dic hj">佛</span><span class="word_dic hj">家</span>)에서 귀하게 여기는 꽃이다. 물로 뛰어든 심청이가 연잎에 싸여 물 위로 떠올랐다는 건 환생을 뜻함인가? 소설에서의 심청은 용궁의 왕비가 되었다지만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언제까지나 효심의 표상으로 새겨져 있다. 연꽃 전설의 발상지로 알려진 연화리(<span class="word_dic hj">蓮</span><span class="word_dic hj">花</span><span class="word_dic hj">里</span>)에는 아직도 연꽃이 핀다고 한다. 이곳 연화리에 피는 연꽃은 어느 연꽃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다.<br><br>연봉바위는 중화동 해안에서 뱃길로 반시간여의 거리, 두 개의 바위섬을 중심으로 주변에 흩어져 있는 바위들이 멀리서 보면 마치 떨어져 나뒹구는 연꽃처럼 보인다. 가까이서 본 연봉바위는 심청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 그러니까 억겁에 걸쳐 파도에 부서지고 바닷물에 씻긴 세월의 흔적 바로 그것이었다. 바위섬 뒤편에 사람의 인기척이 있어 환생한 심청이 아닌가 하여 긴장도 했으나 그것은 세월을 아랑곳하지 않는 강태공의 모습이었다. 뜻하지 않은 낚시꾼의 출현으로 신비감은 좀 가셨으나 대신 사람을 겁내지 않고 줄곧 우리 배를 따라오는 물개 가족의 환대가 일행을 즐겁게 했다.

백령도 연봉(꽃)바위

<strong class="c-title" style="-webkit-tap-highlight-color: rgba(0, 0, 0, 0);">백령도 연봉(꽃)바위</strong><span class="c-description" style="-webkit-tap-highlight-color: rgba(0, 0, 0, 0);">바다로 뛰어든 심청이가 연꽃을 타고 환생한 곳으로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 있다. 멀리서 보면 연꽃잎이 몇 잎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span>

북위 37도, 남한 본토보다 북한 내륙이 더 가깝다는 지리적 여건으로 백령도는 이제까지 그 아름다운 날개 깃을 접고서 살아왔다. 섬 주민보다 주둔 군인이 더 많은 것도 그런 이유겠지만, 어떻든 이곳은 잊혀진 섬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남북간 해빙 무드가 감도는 오늘에 와서 백령도도 이제 서서히 날개 깃을 펼치려 한다.<br><br>하루에도 수차례 쾌속 관광선이 닿는 용기포구에는 육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포구에서 마주 보이는 사곳해안의 규조토(<span class="word_dic hj">硅</span><span class="word_dic hj">藻</span><span class="word_dic hj">土</span>) 사장에는 오가는 차량으로 분주하다. 규조 껍질로 형성된 사곳해안은 물이 빠지면 콘크리트 바닥처럼 굳어지기 때문에 자동차의 통행은 물론 항공기의 이·착륙까지 가능하다고 한다.<br><br>어떻든 백령도는 이제 더 이상 천혜의 절경을 감출 수 없다. 두무진(<span class="word_dic hj">頭</span><span class="word_dic hj">武</span><span class="word_dic hj">津</span>) 일대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병풍바위와 콩돌해안의 그 멋진 해수욕장도 어쩔 수 없이 뭍사람들에게 속살을 드러내야만 한다.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백조는 이제 그들의 보금자리를 내놓아야만 한다.

두무진 포구

<strong class="c-title" style="-webkit-tap-highlight-color: rgba(0, 0, 0, 0);">두무진 포구</strong><span class="c-description" style="-webkit-tap-highlight-color: rgba(0, 0, 0, 0);">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병풍바위가 절경을 이룬다. 이곳의 바위가 장수들이 모여 회의하는 형상이라 하여 두무(<span class="word_dic hj">頭</span><span class="word_dic hj">武</span>)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span>

<strong style="padding: 0px 7px 0px 0px; color: black; font-size: 12px; font-weight: bold;">[네이버 지식백과]</strong> 흰 새가 알려 준 연인의 섬, 백령도 (물의 전설, 2000. 10. 30., 도서출판 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