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 사촌도 안 준다는 강장 채소의 대명사

by 해연 posted Jan 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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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

이날 이때껏 지방마다 써 온 부추의 향어()에는 소풀, 부채, 부초, 난총, 솔, 졸, 정구지 따위가 있다.                 충청도에서는 졸, 우리 동네 경상남도 산청에서는 소풀, 내 처가 경상북도에선 정구지, 전라도에서는 솔, 경기도 지방에서는 부추 등으로 각각 다르게 불린다.

이를 하나로 통일하여 표준어에 해당하는 편리한 우리말 이름을 정했으니 그것이 '부추'다. 만물개유명()이라고 만물은 다 제 이름이 있다고 하였다.                 기실 나라 사람끼리도 이렇게 헷갈리니 표준어를 정해 놓지 않으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물며 국내에서 이 정도라면 나라끼리는 어떻겠는가. 아무리 외국인들을 보고 이 풀 이름은 '부추'라고 해도 의사 불통이다.                 부추를 놓고 서양인은 갈릭 차이브(garlic chive), 중국인은 꼬우초(kow choi, 구채, ), 일본인은 니라(nira), 동남아인은 쿠차이(cuchay)라 불러 대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여기에도 세계 공통어가 필요하였으니 다름 아닌 학명(scientific name)으로 부추의 학명을 Allium tuberosum으로 정했다.                 누가 봐도 다 알아차리니 얼마나 편리한 만국 공통어인가! 보다시피 학명은 만국 명명 규약에 따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글자체인 이탤릭체로 쓰기로 했고, 반드시 라틴어로 쓴다.

여기서 파, 양파, 마늘과 같은 파속 식물을 뜻하는 속명 Allium은 대문자로 쓰고, 종소명인 tuberosum은 소문자로 쓴다.                 이렇게 속명과 종소명을 나란히 쓰는 이명법()을 창시한 사람은 스웨덴에서 국보로 치는 분류학의 비조() 린네(Carl von Linné)이시다.

        부추는 외떡잎식물(단자엽식물), 백합과에 속하며, 한 번만 종자를 뿌리면 그다음 해부터는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 계속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동남아시아가 원산이다.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하기도 하지만 특히 농가에서 대량으로 재배한다. 필자도 텃밭에 20여 무더기를 심어 키우는지라 나름 그들의 생태를 꽤나 아는 편이다.

부추

부추

포기나누기(분근, )로 옮겨 심으며, 수염뿌리가 아주 세게 얽히고 뻗어 난다.                 대개 봄부터 가을까지 대차게 자라는지라 자라는 족족 3∼4회 연거푸 베 먹는데, 그때는 최대한 흙 가까이 밑동을 자른다.                 그런 다음 그 자리에 재를 흩어 주는데, 이것은 강알칼리성인 재 가루가 다른 병균이 달려드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꼴을 베다가 벤 자리에 어른들이 준 담뱃재를 문질렀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아무튼 늦여름이면 포기마다 멀쑥하게 긴 꽃장대가 목을 빼고 길게 치솟는데 그 끝에 꽃송이들이 한가득 피고, 거꾸로 된 심장 꼴인 6개의 검은색 종자(씨앗)를 품은 모난 열매는 익으면 과피()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삭과이다.

        소복 같은 부추의 새하얀 꽃은 청초하다고나 할까? 꿀벌부터 뭇 벌레들이 꽃물을 빨겠다고 마구 달려든다.                 물론 부추는 전형적인 외떡잎식물이다. 이들은 꽃잎의 수가 3의 배수이고, 쌍떡잎식물은 4와 5의 배수라는 공식을 생각한다면 부추의 꽃잎은 몇 장일까?                 꽃잎과 수술은 각각 6장씩인데, 사실 외떡잎식물에서 꽃잎이 셋인 것은 동·서양란에서 보듯 아주 많지만 배수인 여섯인 것은 드물다.

부추는 누가 뭐래도 알아주는 파워 푸드(power food)요, 슈퍼 푸드(super food)라는데, 한자명이 (기양초), (장양초)라는 것만 보아도 부추가 정력에 좋은 강장() 채소임을 말해 준다.                 오죽하면 먹고 나서 소변이 벽을 뚫는다는 '파벽초()'라 했겠는가.

우리나라 사찰에서 특별히 먹지 못하게 하는 음식으로 오신채()라는 것이 있으니, 마늘(Allium sativum)과 파(A. fistulosum), 부추(A. tuberosum), 달래(A. monanthum), 흥거(Scilla scilloides, 무릇) 다섯으로, 흥거를 빼고는 모두가 백합과, 파속(Allium)이며, 모두 자극성이 있고 톡 쏘는 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절에서는 양파(A. cepa)도 먹지 못하게 하니 그 또한 파속 식물이라 그렇다.                 참고로 학명 쓰기에서 처음은 학명을 모두 쓰지만 위에서 보는 것처럼 두 번째부터는 속명은 약자(AlliumA.처럼)로 쓰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오신채의 '신()'은 단지 매운맛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양기를 성하게 하는 기능이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홍거(흥거)는 서양에서 나는 미나리과 식물로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는 식물이라 한다.                 재언하지만 오신채를 절에서 금하는 것은 날로 먹으면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고, 익혀 먹으면 음심()을 일으킨다고 해서이다.

        "4월 부추는 사촌도 안 준다"고 하던가. 부추 맛은 조금 시고 맵고 떫으며, 비타민 A와 비타민 C가 풍부하고, 활성산소 해독 작용은 물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식품이다.                 우리가 먹는 부추 요리도 참 많으니, 부추잡채·무침·부침개·겉절이·김치·장아찌·즙은 물론이고 보신탕이나 추어탕에도 빠지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배추김치나 오이소박이 담글 때 부추를 넣으면 독특한 향으로 맛을 돋우며, 재첩국에까지 넣는다.                 부추에 함유되어 있는 당질은 대부분 포도당과 과당의 단당류이며, 특유한 냄새는 유황 화합물로 독특한 향미가 있는 식품이다.                 마늘의 대표적인 성분은 자기 방어 물질인 알리신(allicin)인데 이는 동맥경화, 혈압, 항염증에 좋다.                 또한 마늘은 매운맛과 동시에 톡 쏘는 마늘 냄새를 풍기는데, 마늘뿐만 아니라 양파나 부추도 유사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식이약()이요, 약식동원()"이라고 음식 속에는 몸에 필요한 약이 들어 있다. 부연하면 음식이 약인 것이니 고루고루 잘 먹는 것이 백번 옳다.                 여태껏 부추가 유달리 질깃한 것이 이 사이에 자꾸 끼여 귀찮고 시시하게 여겼는데,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급작스레 180도 확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