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너무 쉽게 믿었던 건가

by 통준회 posted May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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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당분간 한국의 불만과 비난은 감수하기로 작심한 듯하다. 그것 말고는 중국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訪中)과 관련해 보여준 일련의 외교적 결례(缺禮)를 설명할 길이 없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지난 30일 상하이 엑스포 개막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천안함 희생자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굳어져가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후 주석은 이 대통령에게 사흘 뒤에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에 대해선 귀띔도 하지 않았다.

중국은 2년 전인 2008년 5월 이 대통령의 첫 방중(訪中)에 맞춰 한·중(韓·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그전까지 한·중 관계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였다. 글자 하나를 바꾼 이 표현의 변화를 놓고 중국은 자신들의 외교에서 한국의 위상이 일본보다 높아졌고, 인도·러시아와 같은 급(級)이라고 했다.

중국의 설명을 받아든 청와대는 중국 외교에서 한국의 순위가 어디쯤 되는지 상세히 브리핑하기도 했다. 그런 중국의 국가 주석이 우리 대통령을 만나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계획에 대해선 일언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은 것이다. 왕조(王朝) 시대로 돌아간 것도 아닌데 남북한 정상을 사흘 간격으로 차례로 불러들이는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청와대와 외교부는 중국에 대해 상당히 격앙된 분위기다. 그러나 이제 와서 속을 끓인다고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 혼자 나날이 늘어가는 무역량과 관광객 규모, 각종 교류 지표를 붙들고 이제 중국이 보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북한보다 커졌다고 지레짐작했던 것일지 모른다.

중국이 지금 김정일을 불러들인 것은 상당한 모험이고 도박이다. 북한은 아직도 정치 수용소를 운용하는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국이고, 주민은 굶주리는데 죽은 지도자의 생일 잔치에 불꽃놀이를 하느라 60억원을 허공에 날려버리고, 툭하면 테러와 도발을 일삼는 집단이다. 김정일이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나라도 거의 없다. 김정일은 2000년 이후 러시아를 한 번 방문했을 뿐 중국만 5번 찾았다.

반면 중국은 최근 들어 부쩍 ‘소프트파워’에 신경을 쓰고 있다. 문화와 언론 분야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군사력·경제력만으로 세계 1등국가가 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작년 10월엔 70여개국, 170여개 언론사 대표를 초청해 ‘제1회 세계 미디어 정상회의’를 열기도 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회의 개막식에서 “중국 정부는 외국 언론의 취재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중국이 김정일의 방중(訪中) 사실 자체를 공식 확인조차 하지 않고, 김정일이 최고급 호텔의 227평짜리 스위트룸에 묵으면서 최고급 벤츠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취재하는 것도 통제하고 있다. 중국이 정말 세계 1등 국가를 추구하는 나라인가 싶은 대목이다.

중국은 이런 위험까지 떠안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지금 북한에 손을 내미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중국의 이익에 맞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작년 11월 량광례 중국 국방부장이 평양에서 북한 군 지도부와 축배를 들며 “피로 맺어진 중국·북한 간 친선 관계”라고 했던 중국의 기본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미는 북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한다”며 베이징만 쳐다보곤 했다. 6자회담도 마찬가지다. 6자회담은 중국의 제안에 따라 2003년 8월 첫 회의가 열렸고, 북한 핵의 실질적 해결 국면의 문턱에서 번번이 좌초됐다. 중국이 6자회담 주최국인데도 북한은 6자회담장을 박차고 나와서는 핵실험을 두 번이나 실시했다. 중국은 이런 북한을 늘 감싸고 돌았던 든든한 후원자다.

결국 중국은 당분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을 껴안고 가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한·미는 이런 중국을 통해 북한을 바꿔보겠다고 외교적 총력을 기울여 왔던 셈이다.

중국이 북한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중국 변수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전략부터 먼저 세워야 한다. 막연한 기대감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게 최근 중국이 북한 껴안기를 통해 우리에게 보낸 분명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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