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6일(현지시간) 발표한 새 대북정책 기조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고강도 압박을 내세우면서도 협상의 문은 열어뒀다는 점이다. 그간 선제타격을 강조하며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입장과 비교할 때, 대화에 대비한 포석을 깐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외교·안보 수뇌부는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한다”며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협상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밝혔다.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강조했지만 그간 대북 강경 기조를 감안하면 한발 물러선 것으로도 보인다. 제재·압박을 통한 선 핵개발 포기, 후 대화라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별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로 부각시킨 만큼 대화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상원의원 전원에게 새 대북정책 기조를 브리핑한 후 공동성명을 발표하게 했다. 북한 문제가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대내외에 공표한 것이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중국을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것 역시 오바마 행정부와 다른 점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27일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통제 가능한 위협으로 보고 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보다 직접적인 위협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2월 북극성 2형 발사 등 중·저강도 도발을 지속하면서도 추가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하지 않은 것도 대화 가능성을 높인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매체와 우리민족끼리 등 선전매체를 통한 ‘말 폭탄’을 쏟아내면서도 고강도 도발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중국의 중재로 대화를 위한 물밑 접촉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중국 6자 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1년여 만에 일본 방문길에 오른 것 역시 대화 채널 복원을 위한 사전준비라는 해석이다.
대화 가능성에도 협상 테이블이 펼쳐지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을 넘어서야 한다. 대화의 전제조건을 놓고 남북은 물론이고, 미·중 등 주변 강대국 간 시각차도 여전하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표면적 차원의 비핵화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뒷받침된 비핵화의 길로 나와야지만 대화의 문이 열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