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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정일 그늘 벗어나 홀로서기
국제사회 관심 끌어 권력 다지기
병력 1만3000명, 전차·미사일 200대
모든 무기 동원 위협적 행사 준비
풀리던 남북관계 다시 냉각될 우려
북 건군절 4월 25일서 2월 8일로 변경
열병식(閱兵式)은 한 국가나 체제의 군사역량을 함축한다. 정체성의 절정을 보여줄 상징적 공간(주로 대광장)을 무대로 특정 군대가 가진 전투 장비와 병력, 그리고 이를 통해 가늠할 수 있는 사기와 위용을 드러낸다. 군에 대한 검열이란 사전적 의미를 넘어 ‘근육질’을 자랑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는 의미다.
이런 열병식이 남북관계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하루 전인 다음달 8일 평양에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치르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한·미 연합군사훈련까지 미뤄 가며 ‘평화 올림픽’에 공들여 온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군사 퍼레이드 자체를 도발이라 간주하긴 쉽지 않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시달린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도발 악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발표는 지난 23일 노동신문을 통해 나왔다. 노동당 정치국 결정서는 김일성이 북한군을 정규적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킨 1948년 2월 8일을 “건군절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에 건군절로 기념해 온 매년 4월 25일은 “조선인민혁명군창건일로 한다”는 게 북측 설명이다.
북한은 원래 정권 수립 7개월 전인 1948년 2월 8일을 인민군이 만들어진 건군절로 삼았다. 이후 1978년 건군절을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는 1932년 4월 25일로 바꿨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파벌 숙청이 끝나고 권력을 독점하면서 김일성 중심으로 역사 정통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군까지 완전히 통제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군 창건일을 변경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변경도 정치적 결정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정은(얼굴) 노동당 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려는 움직임이란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실장은 “핵과 미사일 같은 전략무기를 중시하는 김정은의 군사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선대(先代) 수령과 차별화를 모색하는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지난 1일 김정은의 신년사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2013년 첫 신년사에서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강조하며 ‘김일성’(11회), ‘김정일’(14회), ‘수령님’(9회), ‘장군님’(11회) 등 총 45차례 언급하며 선대에 대한 예우를 강조했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쏠린 국제사회의 관심을 활용해 통치 권력을 다질 목적으로 열병식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갑자기 건군절을 바꾼 것도 이를 뒷받침 한다. 북한은 지도자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역사를 복원 및 재창조하면서 ‘혁명전통’을 만들었고 이를 기념일로 지정하고 반복해 기리면서 권력의 정통성을 만들어 냈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는 “북한의 국가기념일엔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다”며 “기념일이 만들어지거나 변화가 보인다면 정치적 변동 가능성도 점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변경 조치로 다음달 8일 북한군은 창설 70주년을 맞는다. 북한은 매 5년, 10년 주기를 ‘꺾어지는 해(정주년)’라 부르며 각종 기념일을 성대히 치르곤 했다. 한·미 정보 당국은 북한군이 지난달 말부터 평양 외곽 미림비행장 일대에서 병력 1만3000여 명과 전차·트럭·미사일 등 200여 대 장비를 동원한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병력이나 장비의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의 귀띔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26일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가 주최한 제1차 ‘한반도 전략대화’ 기조강연에서 “북한이 가진 거의 모든 병기를 동원한 상당히 위협적인 열병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북한 최초의 열병식은 정규군 창설을 기념해 1948년 2월 8일 평양역 광장에서 열렸다. 소련식 계급장을 단 북한군 보병·포병 등 3개 사단 규모(2만여 명)의 병력이 집결했으며 전차를 비롯한 기동화부대의 행진도 함께 진행됐다. 이후 열병식은 1960년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8·15 광복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고, 1954년부터 장소도 김일성광장으로 옮겨졌다. 북한 당국의 수도 건설 구상에 따라 김일성광장이 완공된 이후다. 60년대 들어 변화가 생겼다. 김일성 유일 체제로 개편되면서 횟수는 1961~90년 30년간 총 3회로 급격히 줄었고 시기도 8·15 광복 중심에서 정권수립일(9월 9일), 군 창건일(4월 25일) 등으로 다변화됐다. 이번 열병식은 북한 정권 수립 이후 33번째로, 김정은 정권 들어서는 일곱 번째다.
지도자의 스타일도 행사에 반영됐다. 김일성 주석은 열병식에 큰 관심이 없었던 반면 영화 연출을 좋아한 김정일은 체제 선전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면서 2011년까지 총 13회의 열병식을 열었다. 입장하는 부대의 대오 편성까지 직접 주문하는 등 관심을 보였고, 당·정·군 기념일을 중심으로 열병식을 개최하는 형식도 자리 잡았다.
김정은은 열병식을 핵·미사일 전력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았다. 김일성 출생 105주년을 기념한 지난해 4월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발사체를 공개하면서 관영 TV는 물론 유튜브까지 동원해 생중계하는 새로운 선전 방식을 선보인 바 있다. 당시 등장했던 각종 미사일은 이후 하나둘 시험발사가 이뤄졌고 그때마다 한반도는 격랑에 휩싸였다. 오는 8일 진행될 열병식은 그 결정판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림픽 국면을 기회로 모처럼 화색이 돌던 남북 관계가 다시 출렁일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